우리 시대 철인으로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도올 김용옥 선생이 영덕에서 초청 강연회를 가졌다.
152년 전 최초의 동학혁명 발상지인 창수면 신기리 우정골 병풍바위에서 천제를 지내고 600여명이 동학혁명 횃불을 들었던 역사적 현장 학습을 통해 동학혁명이 근대사회와 민주주의 역사에 끼친 흐름을 새롭게 조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1871영해 동학혁명 기념사업회`(회장 권대천) 초청과 영덕군 주최로 이뤄진 이번 강연회는 11월 2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권태용 사무국장의 사회로 영덕읍 우곡리 소재 영덕군민회관에서 `사람이 하늘입니다` 라는 대형 그림과 현수막이 내 걸리고 영덕읍 출신 인물화 대가 이형수 화백의 동학관련 작품이 족자로 입구를 정갈하게 장식한 가운데 `1871 영해 동학혁명은 여기서 시작되었다`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이날 그가 연구한 동학에 대해 혁명이 처음 시작이 된 영해지역을 주민과 외지에서 그의 강의를 청취하러 온 국민들에게 바르게 이해하자는 자리로 만들었다.
그는 "1871년 3월 10일 영해 일대의 동학에 믿음을 지닌 민중들이 주축이 되어 교조신원을 내걸고 영해부 관아를 습격하고 영해부사 이정을 처단한 역사적 사건을 혁명으로 볼 것이냐 아니냐에 관해 갑론을박을 주고받고 있으나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민주 이념이 도입되기 이전의 구시대 개념적 구상으로 혁명이라는 개념도 정확하게 규정하지 않으면 영해 동학 혁명이라는 명명도 허명이 되고 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동학을 혁명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동학이 단순히 하나의 새로운 정치적 양태를 요구한 것이 아닌 인간의 삶의 총체적 개벽을 요구한 철리를 주창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혁명은 점이 아니라 면이다. 한 시각, 한 시점의 사건이 아니라 수없는 사건이 교차되는 복합적 사태로, 사건은 순간적으로 명멸하지만 사태는 지속된다. 혁명은 순간의 명멸이 아닌 개화의 지속"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동학혁명은 한 시점의 사건으로 실체화 할 때 동학이 전북 정읍의 것이냐, 고창 것이냐 경주 것이냐, 영해 것이냐 목천 것이냐 따위의 오류가 생겨나는데 동학은 이 모든 사건의 집합체이며 지금 이 시각에도 진행되고 있는 혁명으로 우리가 이러한 성격을 명료하게 파악하지 못하면 역사는 무의미체가 되고 만다."고 역설 했다.